2008년 7월 31일 목요일

불교와 기독교

불교와 기독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우선 교주(교조)가 다르다. 기독교는 예수(=하느님 또는 하나님)를 믿는다. 그런데 예수는 엄청난 초능력을 갖고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또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죽은 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러니까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 계신다. 나이가 얼마나 되나? 2008 살? 엄청나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 생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적을 이루어 냈다. 물 위를 걸어 다니고, 병자를 고치고, 장님을 눈뜨게 하고, 앉음뱅이를 일어나게 만들고, 물고기 몇 마리와 떡 몇 조각으로 수천명을 먹여 살리고, ... (지금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 이럴 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에 비해 불교의 교주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어떤가? 그냥 평범하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자리를 같이 해서 태어나셨다. 모든 인간들 또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부처가 되고 난 다음에도 그는 아무런 초능력적인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셨다. 돌아가실 때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것도 그 흔한 식중독으로... 그가 행한 기적이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분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를까? 예수는 자기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죽어서 천당을 갈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하느님 이외의 어떤 신도 믿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무시무시하게 겁을 주신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천당에를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천당은 과연 죽어서라도 꼭 가 볼만한 그런 좋은 곳인가? 나도 한 번 가 보고싶기는 하다. 혹시 천당 가는 암표는 어디 팔지 않나?

그런데 부처님은 절대로 부처를 믿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오히려 “너 스스로를 믿고 진리를 따르라”고 하신다. (자등명 법등명)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낸 것 밖에 없다. 그 진리라는 것도 자기가 만들어 낸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아니고 원래 있던 것을 찾아 낸 것뿐이라고 고백을 하셨다. 부처님은 그가 발견해 낸 진리를 그의 평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을 하시다가 80세에 돌아 가셨다. 그리고 그는 예수처럼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가 발견해 낸 진리(법)와 그의 가르침만이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있을 뿐이다.

예수는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예수와 하느님 (예수도 하느님도 지금 다 살아 계신다)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을 갈 뿐 아니라 그 천당은 가기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 사업도 잘 되고, 아들도 낳고, 병도 낫게 해 주시고, 아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해 주시고, ... 원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 (전지전능) 안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 이 얼마나 엄청나고 쉬운 길인가?

그런데 부처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는가? 서울대학에 가려면 기도가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고, 사업이 잘 되게 하려면 염불이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해야 되고, 병이 낫게 하려면 새벽 예불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침을 맞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기도로 병을 낫게 하고, 염불로 아들 서울대학 입학 시키려고 하고, 새벽예불 참석으로 사업이 번창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신다. 수행 또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물 위를 걸어 보겠다고 하는 짓은 바보나(무명) 하는 짓이라고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 때문에 모든 결과들이 초래된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단다. 이런 대부분의 가르침들이란 우리가 다 아는 소리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진리다.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의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따르는 부처님의 제자(불자)들이라고 하면서 혹시 기독교식으로 절에 다니지는 않는가? 법당에서 절을 하면서 귀가 크고 인도식 옷을 입은 예수님 또는 하느님에게 소원 들어 달라고 비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복권 사는 기분으로 법당의 복전함에 보시를 하는 것은 아닌가? 수행을 한다면서 사실은 도교식의 수련(나는 그것을 종종 숨쉬기 운동이라고 부른다)을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그런 수련을 열심히 해서 물 위를 한 번 걸어 보겠다거나 공중부양을 해 보겠다는 또는 천안통을 얻어서 상대방의 운명을 알아 맞춰 보겠다는 바보 같은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 한 번 곰곰이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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