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30일 수요일

광쩌우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지난 12월 11일 - 18일 홍콩과 광쩌우를 다녀 왔다. 3일간 홍콩에서 학술대회를 참석하고, 홍콩까지 간 김에 광쩌우를 들러 보기로 했다. 광쩌우에는 25년 전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있어서 민폐 끼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3일간 광쩌우에 머무는 동안 그 친구가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해 주기로 했기 때문.

광쩌우에 도착하는 날은 법촌의 장두일씨가 소개해 준 신부님을 만나서 거한 저녁 대접을 받고 잘 놀았다.그리고 둘째 날 관광은 잘 했는데, 그 다음날은 이 친구가 학교에서 강의, 회의 등으로 바빠서 나를 돌봐 줄 수가 없단다.하는 수 없이 혼자서 놀아야 하는데... 광동말은 커녕 중국말도 한마디 못하니... 그렇다고 호텔 방에서 빈둥거릴 수도 없고...무작정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택시는 절대 안 타기로 하고, 오로지 지도와 지하철에만 의존해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결정.(지도와 지하철만 믿는 것이 경험상 가장 안전한 방법)

우선 달마 스님과 6조 혜능 스님의 흔적이 있는 광효사와 육용사를 둘러 보고, 청대에 지어진 광동성 진씨 가문의 사당 겸 서원인 진가사를 둘러 보기로 했다. 그런데 진가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발맛사지를 좀 받는게 급한 일이었다. 그런데 발맛사지 장소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운이 없는지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하나도 만날 수도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발맛사지는 포기하고, 진가사를 그냥 둘러 봤다. 진가사는 박물관으로 개조했는데, 다구 파는데가 있어서 들렀더니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마시는 분위기에는 워낙 익숙한지라 무조건 앉아서 차를 얻어 마시며 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젊은 처녀 하나가 떠듬떠듬이지만 영어가 좀 되는 아가씨를 만났다. 그래서 발맛사지 하는 곳을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마침 그 아가씨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발맛사지 받으러 갈 거니 따라 가면 된단다. (자기 집 근처) 나중에 안 거지만 그 둘은 모녀지간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셈이다. 그래서 두 모녀를 따라서 나서게 되었다.

진가사에서 좀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를 탈 수도 있단다. 택시를 타면 얼마쯤 나오냐니까 기본요금 정도.(10원 미만). 그래서 차비는 내가 낼테니 택시를 타자고 해서 택시를 탓는데... 물론 택시비를 내가 낼 요량으로 나는 앞에 타고, 모녀는 뒤에 타고... 그런데 도착해서는 이 아가씨가 택시비를 내는 게 아닌가? 운전수에게 내 돈을 받으라고 우겼지만 안 통했다. 나는 택시 기사와 말이 안 통하고 그 아가씨는 말이 통하니 내가 이길 수가 없다.어쩔 수 없이 그 싸움에서는 지고 일단은 내려서 돈을 주려고 했으나 한사코 거절을 해서 실패했다. 일단 그 싸움에서는 졌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그럼 그 아가씨와 어머니 두 사람 발맛사지 비용을 내가 부담하겠다고 제안을 했다. 물론 거절 당했다. 그건 절대 안 된단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이번엔 내가 이겼다. 그 아가씨도 그 어머니도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런데 또 사건이 벌어졌다. 발맛사지가 끝나고 나와서 계산을 하려니까 그 어머니가 이미 계산을 다 해버렸단다.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이건 "반칙이다," "약속 위반이다"라고 우겨도 두 모녀는 막무가내다. 내가 돈을 주려고 억지를 써 봤지만 통하지 않는다. 도무지 안 받는다. 어찌 해 볼 도리거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원수(?) 갚을 방법을 모색해서... 그럼 어디 가서 차를 마시든지 밥을 먹든지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대충 저녁 식사 시간쯤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서 안 된단다. 대신 내가 무사히 호텔에 돌아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잡아서 택시 기사에게 말해 줄테니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 가란다.또 졌다. 어쩔 수 없이 잡아 주는 택시를 타고 무사하고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 왔다.

이 두 모녀.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관세음모살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관광지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들.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 퍼센트.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자비를 배푼단 말인가? 물론 길 안내 정도 또는 택시비 내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젊고 예쁜 여성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내가 당한(?) 경우는 설명이 안 된다.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다. 정녕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천사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을까?

그날 밤 여러가지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삶, 사랑, 가치, 인연, 도움, 행복, 복, .......우연히도, 정말 너무나 우연히도 큰 스승들을 만났었다. 내가 이 지구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법 잘난 척 하며 우쭐대고 뽐내며 살아 가는 초라한 내 모습이란...얼마나 우습고 가소로운 인생인가?

정말로 행복하고 큰 깨달음을 얻은 여행이었다. 광쩌우에서 만난 관세음보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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