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일 금요일

불교적 경제생활

Monthly Magazine Buddha
2548 11 4337 2004

특 집 /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 불교와 경제/

불교적 경제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정기문(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

경제생활이란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삶의 한 부분이다. 경제문제는 '무 한한 인간의 욕망에 비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말한다. 물질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사회는 여러 가지 제도 를 만들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시장이라는 제도의 틀 안에서 소위 경제활동이라고 일컬어지 는 생산, 소비, 거래, 교환 등의 활동을 한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물질적 자원의 제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소위 경제활동이라 는 것을 통해서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방법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줄여 나가거나 궁극적으로는 그런 욕망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과연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일까? 어떤 방식이 불교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적 경제생활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무소유'라는 낱말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불교적인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흔히 '무소유'를 강조한다. 그런데 '무소유'의 삶이란 과연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인가? 이 를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이고 실현이 불가능한 뜻으로 받 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는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것을 소유한 다는 것은 무명으로부터 발생하는 우리의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이 세상에 과연 '나' 또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는가? 우리가 세상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이것을 내가 가졌다'라고 착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이 바로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한 수단이다.

≪중아함경≫에 의하면 "만약 옷을 축적하여 선법이 증대하고 악법이 쇠퇴한다면 나는 그 런 옷을 축적해도 좋다. 옷 뿐만이 아닌 음식, 도구, 주택, 촌락 등도 마찬가지다."라고 한다. 결국 무소유를 글자 그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소 유를 통해서 욕망을 충족할 수가 있는가?' 또는 '과연 이 세상의 무엇이든 소유할 만한 가치 가 있는 것인가?'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또는 소유라는 것이 무명과 집착에서 비 롯된 망상의 결과라고 한다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말로 이 해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이나 물질적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 행복이 얻어진다고 믿는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이런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경제활동-생산, 소비, 거래 등-을 한다. 행복 이라는 것은 저 멀리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고, 이는 우리가 활발한 경제활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결국 채워질 수 없는 욕망 을 충족함으로써가 아니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욕망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태국의 유명한 붓다다사 스님은 이 렇게 가르치신다. "어떤 것을 소유하거나 어떤 상태로 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는 깨달음 을 일으키는 기술이 있다. 그 기술은 사물들을 충분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면 갈망이 있을 때는 무엇을 소유하거나 무엇이 되려고 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과, 갈망이 완전히 사라져 사 물의 특징을 통찰할 때는 사물에 대한 태도가 다소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간단한 예로 '먹기'를 살펴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갈망하여 먹는 것은 정견에 따라서 먹는 것과 아주 다르다. 두 가지는 먹는 방법도 다르고, 먹는 동안의 감정도 다르며, 먹고 난 후 일어 난 감정도 다르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없어도 역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아라한들은 갈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지만 여전 히 행위를 했으며 어떤 상태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욕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보 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가. 행위의 결과로서 생기는 이것 혹은 저것으로 되고 싶은 욕망이나 갈애와 상반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특징에 대한 명확하고 철저한 지혜의 힘[正見]에 의 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는 욕망에 따라 동기를 부여받기 때문에 그 결 과 계속 고통의 지배를 당한다."

우리가 모든 종류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욕망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는 것이 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상(無常)이고, 고(苦)이며, 무아(無我)라는 것을 알 아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이것을 깨닫게 되면 어떤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고, 결국 욕망이 아니라 올바른 견해에 의해 지혜롭게 사물과 관계를 가지게 되며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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