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31일 목요일

한국 불교의 문제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기복 불교일 것이다. 이는 누구나 공감하고 흔히 얘기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생락하고...

제가 보기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불교는 흔히 통불교라고 하지만 거의 선불교의 맥을 잇고 있다. 달마 스님으로부터 시작해서 6조 혜능을 거쳐 계승 발전된... 그래서 우리 불교 역사에도 유명한 선사들도 많고, 우리는 그분들을 존경하고 그 행적이나 어록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선사들의 행적이나 어록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그 흉내들을 많이 낸다는 것이다. 선사들의 얽메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행동들을 흉내 낸답시고 괴상망측한 망나니 짓거리나 미친놈 같은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또 선문답 흉내를 낸답시고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또는 "문둥이 이 앓는 소리" 흉내들을 자주 낸다.

그런 괴상한 행동이나 알아 먹지 못할 듯한 소리를 하면 마치 한소식 한 사람처럼 보여질 것이라고 착가들을 하는 모양이다.

이 문제는 스님들도 그렇고 재가불자들도 마찬가지다. 선방에를 좀 다녔다는 스님들은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가끔 한마디씩 해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재가불자들 중에도 참선을 좀 했거나 글줄 꽤나 읽은 사람들도 그런 흉내를 내야 멋있고 제대로 된 불자라고 착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사실 그런 스님들이나 불자들은 정말 깨뿔도 아니고, 그냥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 언행이 폼나고 멋있다고 착각하는 자아 도취자들...

경전을 잘 살펴 보라. (특히 부처님의 직접적인 육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함경을 보라) 부처님이 과연 그랬던가? 경전에 과연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들이 있는가?

이게 아마도 우리 불교에 깊이 스며 든 선불교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처님의 올바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우리나라 불교에서 그런 이상한 문화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불교는 절대로 이상한 헛소리 하는 종교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불법)이 결코 어렵거나 이상한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다만...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

도신 두 손 모음 _()_()_()_

선문답 잘 하는 법 = 헛소리 잘 하는 법

  1. 무슨 소린지 모를 듯한 소리를 많이 지껄인다.
    (물론 자기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라야 한다)
  2.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다.
  3. 비논리적인 말을 자주 한다.
  4. 아무에게나 반말을 찍찍~~ 해 댄다.
  5. 과격한 낱말을 자주 사용한다.
    (예: 똥물, 오줌, 자지, 보지, ...)
  6. 자신이 마치 한 소식 한 사람인 체 한다.
    (정말 깨달은 사람은 절대 티를 내지 않는 법...)
  7. 맛이 약간 간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8. 자신의 기행(奇行)을 자주 자랑한다.

이렇게 하면 헛소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실은 이런 사람 정신착란증 증세입니다.
정신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도신 두 손 모음 _()_()_()_

하느님 vs. 하느님의 말씁

기독교의 교리가 내게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라고 하면 참 좋을텐데 하느님을 믿고 그 충직한 종(=노예)이 되라고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느님의 말씀은 거의 99퍼센트가 진리요 옳은 말씀이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다.

왜 100퍼센트가 아니고 99퍼센트냐 하면 천지 창조설 또는 몇가지 기적 같은 초자연 현상들 그리고 처녀 잉태설, 예수 부활설 등은 아직까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참이다 또는 거짓이다라고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그걸 믿는 사람들에겐 진리라고 생각 되겠지만 그건 맹목적인 믿음일 뿐이다. (이런 걸 우리는 신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위의 일들이 사실인지 아니면 꾸며진 이야기인지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하느님의 말씀들이 옳은 말씀들이고, 우리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하느님의 말슴을 믿고 따르며 숭배하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그 말씀의 주체인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마치 주인을 따르는 종 같이 하라고 하는지...?

혹자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나 하느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나 그게 그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렇지가 않다. 옳은 말씀이라면 그 말씀의 주체가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또는 개님이든 소님이든 믿고 행하는데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하느님을 자꾸 믿으라고 하니까, 그 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힘이 막강할 터이고 모든 것을 다 아시고 ... 그러니 잘 못하면 벌 받을까 봐 두려워서 힘 없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믿고 따를 수 밖에...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치 조폭 두목에게 아무하는 기분...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지 말고, "좋은 진리의 이 말씀"을 믿고 따르라고 하면 안 될까? 그러면 아마도 적어도 신에게 아부한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텐데... 그리고 신을 찬양하기 위해서 성가대를 만들어 훌륭한 음악을 바치고, 어마어마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고, 금촛대를 세우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전을 짓고, 하느님 사업을 위해 전쟁을 하고, ... 이런 일들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결국 차이는... "하느님의 말씀" = 감정과 인격이 없는 무생물의 좋은 진리의 말씀. "하느님" = 화도 내고 벌도 주고 상도 주는 감정이 있는 전지전능하신 살아 있는 생명체.

그런데 기독교 교리에서는 무생물을 숭베하고 믿으면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금기시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독교의) 하나님 이외의 신을 믿으면 그건 마귀의 아들...

나는 "옳은 진리의 말씀"이면 그것이 마귀의 말씀이든 개님의 말씀이든 상관 없이 믿고 따르라고 했으면 참 좋겠는데...

이상 도신의 횡수였습니다.

뱀발: God 이 "하느님"이 아니고 반드시 "하나님"이라야 한다고 우기는 개신교의 언어관도 문제...
하느님이나 하늘님이나 하나님이나 천주님이나...또는 알라님이나...

뱀발 2: 이 논리는 불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제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것이지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불교 신자(信者)라는 말 보다는 불자 또는 불제자라는 낱말이 훨씬 좋습니다.

뱀발 3: religion 을 신앙(信仰)이 아니라 종교(宗敎)라고 번역한 것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지만 절묘하고 탁월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종교 = 주된 가르침. principal or main teaching. 캬~~~

욕보다 더 무서운...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욕을 하거나 빈정거릴 때, 그런 소리를 듣고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넘기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가끔 있기는 한가 봅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 그런 분들을 우리는 거의 군자, 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만 명에 한 명쯤 있을까 말까...?

그런데 그런 분들 100명을 모아 놓고... 칭찬을 좀 해 줬더니... 100명 모두가 흔들리더랍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출 수 있게 만든다지요? 그래서 칭천을 바로 욕보다 더 무서운 바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든 어디서든... 듣기에는 좋지 않은, 그러나 바른 말을 해 주는 사람은 다 멀리 하고... 듣기에 달콤한 말만 해 주는 사람들만 옆에 두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봅니다. 결국, 간신들만 살아 남고... 충신들은 쫓겨 나고...

지금 우리 이명박 대통령 옆에도 그런 칭찬 잘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닌지...? 요새 나라 사정이 너무 답답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불교와 기독교

불교와 기독교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우선 교주(교조)가 다르다. 기독교는 예수(=하느님 또는 하나님)를 믿는다. 그런데 예수는 엄청난 초능력을 갖고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또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죽은 후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러니까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 계신다. 나이가 얼마나 되나? 2008 살? 엄청나다.

그리고 그는 첫 번째 생에서 엄청나게 많은 기적을 이루어 냈다. 물 위를 걸어 다니고, 병자를 고치고, 장님을 눈뜨게 하고, 앉음뱅이를 일어나게 만들고, 물고기 몇 마리와 떡 몇 조각으로 수천명을 먹여 살리고, ... (지금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 이럴 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그에 비해 불교의 교주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어떤가? 그냥 평범하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자리를 같이 해서 태어나셨다. 모든 인간들 또는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부처가 되고 난 다음에도 그는 아무런 초능력적인 기적을 행하지도 않으셨다. 돌아가실 때도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것도 그 흔한 식중독으로... 그가 행한 기적이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두 분의 가르침은 어떻게 다를까? 예수는 자기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죽어서 천당을 갈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하느님 이외의 어떤 신도 믿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무시무시하게 겁을 주신다.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천당에를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천당은 과연 죽어서라도 꼭 가 볼만한 그런 좋은 곳인가? 나도 한 번 가 보고싶기는 하다. 혹시 천당 가는 암표는 어디 팔지 않나?

그런데 부처님은 절대로 부처를 믿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오히려 “너 스스로를 믿고 진리를 따르라”고 하신다. (자등명 법등명)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 진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낸 것 밖에 없다. 그 진리라는 것도 자기가 만들어 낸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아니고 원래 있던 것을 찾아 낸 것뿐이라고 고백을 하셨다. 부처님은 그가 발견해 낸 진리를 그의 평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을 하시다가 80세에 돌아 가셨다. 그리고 그는 예수처럼 다시 살아나지도 않으셨다. 다만 그가 발견해 낸 진리(법)와 그의 가르침만이 2,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 있을 뿐이다.

예수는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예수와 하느님 (예수도 하느님도 지금 다 살아 계신다)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을 갈 뿐 아니라 그 천당은 가기만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하면 사업도 잘 되고, 아들도 낳고, 병도 낫게 해 주시고, 아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해 주시고, ... 원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니 (전지전능) 안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예수를 믿기만 하면 ... 이 얼마나 엄청나고 쉬운 길인가?

그런데 부처님은 어떻게 가르치시는가? 서울대학에 가려면 기도가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고, 사업이 잘 되게 하려면 염불이 아니라 일을 열심히 해야 되고, 병이 낫게 하려면 새벽 예불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거나 침을 맞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기도로 병을 낫게 하고, 염불로 아들 서울대학 입학 시키려고 하고, 새벽예불 참석으로 사업이 번창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신다. 수행 또는 기도를 열심히 해서 물 위를 걸어 보겠다고 하는 짓은 바보나(무명) 하는 짓이라고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 때문에 모든 결과들이 초래된다고 한다.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단다. 이런 대부분의 가르침들이란 우리가 다 아는 소리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진리다. 자연과 우주 삼라만상의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따르는 부처님의 제자(불자)들이라고 하면서 혹시 기독교식으로 절에 다니지는 않는가? 법당에서 절을 하면서 귀가 크고 인도식 옷을 입은 예수님 또는 하느님에게 소원 들어 달라고 비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복권 사는 기분으로 법당의 복전함에 보시를 하는 것은 아닌가? 수행을 한다면서 사실은 도교식의 수련(나는 그것을 종종 숨쉬기 운동이라고 부른다)을 열심히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그런 수련을 열심히 해서 물 위를 한 번 걸어 보겠다거나 공중부양을 해 보겠다는 또는 천안통을 얻어서 상대방의 운명을 알아 맞춰 보겠다는 바보 같은 욕심을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 한 번 곰곰이 반성해 볼 일이다.

"귀신 씨니릭 까먹는 소리" 하기 놀음

우리 나라 불교는 소위 선불교가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에는 당연히 유명한 선사들의 가르침이 있다.

그런데 유명한 선사들의 말씀들을 (선어록) 보면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또는 말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말들이 대부분이다. 그 말들을 나는 가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한다.

그 훌륭한 말들이 내 귀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는 까닭은 내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불자들에게는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흉내내기 놀음병이 혹시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불교에 관한 책을 좀 읽었거나 참선이란 것을 좀 했다 싶은 사람들은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흉내를 내야만 한 소식 한 것처럼 생각하는 소위 "참선병", "공안병", "화두병" 또는 "선문답병", ....

그리고 화두선이 최고 경지의 수행법이고 화두선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들....

이런 것들이 다 선불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것은 전혀 안 하셨던 것 같은데...

부처님 말씀들은 전부 쉽고 명료한 말씀들 뿐인데...

도신 두 손 모음 _()_()_()_

2008년 7월 30일 수요일

광쩌우에서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지난 12월 11일 - 18일 홍콩과 광쩌우를 다녀 왔다. 3일간 홍콩에서 학술대회를 참석하고, 홍콩까지 간 김에 광쩌우를 들러 보기로 했다. 광쩌우에는 25년 전 미국에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있어서 민폐 끼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3일간 광쩌우에 머무는 동안 그 친구가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해 주기로 했기 때문.

광쩌우에 도착하는 날은 법촌의 장두일씨가 소개해 준 신부님을 만나서 거한 저녁 대접을 받고 잘 놀았다.그리고 둘째 날 관광은 잘 했는데, 그 다음날은 이 친구가 학교에서 강의, 회의 등으로 바빠서 나를 돌봐 줄 수가 없단다.하는 수 없이 혼자서 놀아야 하는데... 광동말은 커녕 중국말도 한마디 못하니... 그렇다고 호텔 방에서 빈둥거릴 수도 없고...무작정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택시는 절대 안 타기로 하고, 오로지 지도와 지하철에만 의존해서 시내 구경을 하기로 결정.(지도와 지하철만 믿는 것이 경험상 가장 안전한 방법)

우선 달마 스님과 6조 혜능 스님의 흔적이 있는 광효사와 육용사를 둘러 보고, 청대에 지어진 광동성 진씨 가문의 사당 겸 서원인 진가사를 둘러 보기로 했다. 그런데 진가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발맛사지를 좀 받는게 급한 일이었다. 그런데 발맛사지 장소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운이 없는지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하나도 만날 수도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발맛사지는 포기하고, 진가사를 그냥 둘러 봤다. 진가사는 박물관으로 개조했는데, 다구 파는데가 있어서 들렀더니 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차 마시는 분위기에는 워낙 익숙한지라 무조건 앉아서 차를 얻어 마시며 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젊은 처녀 하나가 떠듬떠듬이지만 영어가 좀 되는 아가씨를 만났다. 그래서 발맛사지 하는 곳을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마침 그 아가씨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발맛사지 받으러 갈 거니 따라 가면 된단다. (자기 집 근처) 나중에 안 거지만 그 둘은 모녀지간이었다. 구세주를 만난 셈이다. 그래서 두 모녀를 따라서 나서게 되었다.

진가사에서 좀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를 탈 수도 있단다. 택시를 타면 얼마쯤 나오냐니까 기본요금 정도.(10원 미만). 그래서 차비는 내가 낼테니 택시를 타자고 해서 택시를 탓는데... 물론 택시비를 내가 낼 요량으로 나는 앞에 타고, 모녀는 뒤에 타고... 그런데 도착해서는 이 아가씨가 택시비를 내는 게 아닌가? 운전수에게 내 돈을 받으라고 우겼지만 안 통했다. 나는 택시 기사와 말이 안 통하고 그 아가씨는 말이 통하니 내가 이길 수가 없다.어쩔 수 없이 그 싸움에서는 지고 일단은 내려서 돈을 주려고 했으나 한사코 거절을 해서 실패했다. 일단 그 싸움에서는 졌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그럼 그 아가씨와 어머니 두 사람 발맛사지 비용을 내가 부담하겠다고 제안을 했다. 물론 거절 당했다. 그건 절대 안 된단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겨우 이번엔 내가 이겼다. 그 아가씨도 그 어머니도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런데 또 사건이 벌어졌다. 발맛사지가 끝나고 나와서 계산을 하려니까 그 어머니가 이미 계산을 다 해버렸단다.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이건 "반칙이다," "약속 위반이다"라고 우겨도 두 모녀는 막무가내다. 내가 돈을 주려고 억지를 써 봤지만 통하지 않는다. 도무지 안 받는다. 어찌 해 볼 도리거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원수(?) 갚을 방법을 모색해서... 그럼 어디 가서 차를 마시든지 밥을 먹든지 하자고 제안했다. (그때가 대충 저녁 식사 시간쯤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라서 안 된단다. 대신 내가 무사히 호텔에 돌아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잡아서 택시 기사에게 말해 줄테니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 가란다.또 졌다. 어쩔 수 없이 잡아 주는 택시를 타고 무사하고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 왔다.

이 두 모녀. 천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관세음모살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관광지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들. 다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 퍼센트.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런 자비를 배푼단 말인가? 물론 길 안내 정도 또는 택시비 내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젊고 예쁜 여성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런데 내가 당한(?) 경우는 설명이 안 된다.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이다. 정녕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니고서야, 천사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을까?

그날 밤 여러가지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삶, 사랑, 가치, 인연, 도움, 행복, 복, .......우연히도, 정말 너무나 우연히도 큰 스승들을 만났었다. 내가 이 지구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숨을 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법 잘난 척 하며 우쭐대고 뽐내며 살아 가는 초라한 내 모습이란...얼마나 우습고 가소로운 인생인가?

정말로 행복하고 큰 깨달음을 얻은 여행이었다. 광쩌우에서 만난 관세음보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자율 또는 자유 의지

세상는 자세히 살펴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어떤 현상 또는 우리의 행동들이 나 스스로 하는가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 움직이는가에 따라 다르게 불려진다. 또는 그 원인이나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같은 현상들을 다르게 일컫기도 한다.

우리가 스스로 적게 쓰면 검소하다고 하고, 타의에 의해 적게 쓰면 가난이라고 한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면 겸손하다고 하고, 타의에 의해 자기를 낮추면 비굴하다고 한다.
일을 해 주고 스스로 돈을 받지 않으면 자원봉사, 돈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하면 강제 노동.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고 성관계를 맺으면 사랑을 나눈 것이고, 돈을 주고 받으면 매매춘이 된다.
남녀가 합쳐야 성관계 이루어지는데, 돈을 주는 쪽은 즐기는 것이고, 돈을 받는 쪽은 몸을 판다고 한다. (사실은 영혼 까지도...)

돈을 주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놀이가 되는데, 돈을 받고 노래하면 노동이 된다.
나이트에 가서 돈주고 춤을 추면 놀이가 되고, 돈을 받고 춤을 추면 노동이 된다.
돈을 주고 술을 마시면 놀이가 되지만, 돈을 받고 술을 마시면 역시 노동이다. (술상무?)
돈 십만원 줄테니 봉정암까지 가서 무언가 전해 주는 심부름좀 하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을 하지만 (일이라고 생각 되니까),
스스로 고생고생 하면서 봉정암까지 아무것도 받지 않고 기어 오른다 (놀이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세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순교라고 하고, 타의에 의해 버려지면 살해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재물을 남에게 주면 보시가 되는데, 타의에 의해 주게 되면 강탈 당한 것이 된다.

이처럼 같은 현상이지만 자발성 또는 자유의지에 기초할 때 만이 진정하게 가치 있는 일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역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어야 하고, 내 행복은 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 법문에는 "주인공"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가 보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다른 애완동물들은 오로지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애교를 떤다. 그래야 밥도 많이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주니까... 그래서 그렇게 살면 개같은 인생(음... 견생이라고 해야 하나...?)이 될 것이리라.

우리는 혹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행동하는 적이 없을까?
그래서 나는 없고 남의 눈에 비치는 내 껍데기를 위해 살지는 않는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예쁜 옷 입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 잘 하고,
직장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 열심히 일하고,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 웃음을 웃고,
힘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고,
하느님 또는 부처님께 잘 보이기 위해 보시하고,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착한 일 하고,
내신성적 때문에 봉사활동 하고,

............

기문의 횡수 _()_()_()_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서울 시장이 되었을까?
이런 걸 두고 맛이 갔다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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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

흐르는 역사 속에서 서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하심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하며,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2004년 5월 31일
서울특별시장 이명박 장로 외
서울의 부흥을 꿈꾸며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 일동

첫 경험 (퍼온글)

첫 경험

나는 오늘 처음으로 경험했다
작은 방에서
내 마음 속의 그 분께 모든 걸 드렸다.

가슴 뛰는 설레임과
처음이란 두려움으로 맞이한
첫 경험...

그러나 모든 게 끝난 지금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이런 게 어른이 된다는 걸까?

부끄러움에
수줍게 뒤를 돌아 보니
하얀 색 위에 선명한
빨간 흔적...

내가 실수 한 건 아닐까?
그러나 후회하진 않아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내 맘을 가져 간 그분을 탓하진 않아
친구들은 스무살 때 경험했다던데 뭐
내 나이 이제 스물 하나
그래...
난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그러나...
그러나...
자꾸 밀려드는 이 허무함은 무얼까?

아아...
투표란 이런 것인가?

모든 권위는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권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대통령, 국회, 선관위, 검찰, 헌법재판소, ...
모두 그 권위가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이지 그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무현이든 안노무현이든... 또는 김무현이든...

대통령의 권위가 인정되듯이 국회의 권위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만일 탄핵소추 제도가 불합리하다면 헌법을 먼저 고쳐서 대통령 탄핵제도를 없애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헌법에 있는 제도를 무시하고 촛불 들고 군중들이 결정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헌법재판소의 권위와 그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만일 헌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헌을 해서 헌법재판소를 없애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헌재를 두고 촛불 든 군중들이 판단하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이런 결정이 나면 존중하고, 저런 결정이 나면 항거하겠다는 생각... 바로 인민 재판입니다. (요줌 분위기로 봐서는 만일 헌재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이제는 촛불이 아니라 횃불 집회로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니. 시민 폭동으로 유도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헌법재판소는 왜 있어야 합니까? "이런 결정이 나면 받아들이고, 저런 결정이 나면 횃불집회로 응징하겠다?" -- 이건 민주주의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고, 헌법을 수호하는 것도 아니고, XX도 아닙니다.

촛불 집회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영향을 (사실은 위협을) 줄 이유도 없고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구요? 정말 논리적 모순입니다.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촛불집회를 왜 합니까? 방송과 정치권에서는 왜 촛불 집회를 선동합니까? 더구나 김용옥 같은 사람은 학생들에게 촛불 들고 길거리 나가지 않는다고 야단칩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영향을 줄 생각이 전혀 없다구요?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앞으로 모든 법원 앞에서 매일 군중들이 와서 데모할까 두렵습니다. 법원과 판사는 왜 존재합니까? 법원의 권위와 결정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판사들의 판단을 믿지 못하겠다면, 헌법을 바꿔서 판사와 법원을 없애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군중들이 인민재판으로 판결을 하면 됩니다.


노사모가 있으면 반노사모 또는 노미모(노무현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미모도 존중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입니다. 지금은 그냥 대한민국 대통령이구요. 대한민국 대통령은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은 "경애하는... 어쩌고 저쩌고 ... 수령"이 아닙니다. 그냥 대한민국 대통령일 뿐입니다. 탄핵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일 뿐입니다. 탄핵소추의 발의는 국회가 하도록 되어 있고, 그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권위와 책임, 권한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 제도가 불합리한 것이라면, 헌법을 개정해서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권을 없애고, 헌법재판소를 없애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

193명의 국회의원들... 그 중에 부패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국회의원들이 부패했다고 해서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을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쁜 짓 약간 했다고 해서 (경선자금, 대선자금, 측근비리, 말장난, ... 등등) 군중이 촛불 들고 모여서 대통령의 할 일을 못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선거를 통해서입니다. 선거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적절한 절차(국회의 탄핵소추)를 거쳐서 권한을 정지시키면 됩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 수단입니다. 절대로 군중들이 촛불 들고 문화행사라는 이름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국회의원들을 믿을 수가 없다구요? 그러면 국회의 기능을 정지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국회의원을 솎아 내면 됩니다. 검찰을 통해서.... 선거를 통해서.... 그래도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헌을 해서 국회라는 걸 없애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군중이 국회의 임무를 대신하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권위가-노무현의 권위가 아닌-존중되는 사회, 그리고 모든 헌법기관의 권위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개인(특히 정치인)에 대한 숭배는 정말로 위험합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나 "위대하시고 우리 민중을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어쩌고 저쩌고... 노무현 대통령" 이 탄생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4. 3. 29. 정기문